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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가치 신두현 목사 202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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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가치

 

애통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라고 하면, 이것이 무슨 넌센스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은 쾌락에 미쳐 있고 스릴을 추구하고 재미와 오락에 시간과 돈을 씁니다. 할 수만 있으면 애통과 고통은 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소리냐, 기독교가 마조히즘(masochism)의 종교냐, 피학적인 종교냐, 일부러 울고 일부러 고통스러워하고 일부러 치고받고 하는 것이 기독교냐 하고 오해하는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문학에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기능이 있지 않습니까? 울 때 정화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것으로 볼 때도 울 수 있다는 것은 능력입니다. 사람들을 보면, (100% 맞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성격이 비교적 좋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발작적인 신경질을 안 부리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잘 우는 사람입니다. 잘 우는 사람은 비교적 건강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반면에 울 줄 모르는 사람은 항상 문제가 있습니다. 폭발적인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은 어떤 사람이었느냐 하면 어렸을 때부터 고통 가운데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형들을 만났을 때도 울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울었다는 얘기가 성경에 어디 있습니까? 구덩이에 있을 때 한 번 울었다는 것이 나옵니다. 그때 애걸하고 울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그다음부터 울지 않습니다. 노예로 팔려 가도 울었다는 소리가 없고요. 보디발의 아내가 무슨 말을 하든 울지 않았고 감옥에서도 울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일종의 상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 가운데 총리가 되게 하는 은혜의 역사를 주셨지만, 그것으로 다 치유가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비로소 치유되기 시작했던 때가 언제입니까? 베냐민을 바라보면서 혼자 가서 울고 나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때가 치유의 때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이 큰 상처를 입으면, 무너지지 않으려고 자기 혼자 버티는 힘듦이 있습니다. 언제 그런 사람들이 치유가 일어나느냐 하면 울 때부터입니다. 자기 아픔을 내어놓고 울 때부터 치유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울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입니다.

 

아브라함도 아내를 잃었을 때 울었습니다. 다윗도 고통 속에 울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울었느냐 하면(시편 41편 참조),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될 정도로 울었다고 얘기합니다. 다윗의 능력이 여기에 있습니다. 어떻게 다윗이 음악을 만들고 어떻게 다윗이 감수성이 예민하고 다윗이 왜 찬송할 수 있는지 아십니까? 울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목사의 설교가 좀 깊이가 있어 진다라는 소리를 들을 때가 언제냐면, 울기 시작할 때입니다. 영혼에 대한 눈물이 있을 때! 눈물은 우리를 깊이 있게 만듭니다. 삶의 모든 부분을 놓고 울어야 합니다. 이 나라의 문제를 놓고 울어야 하고 가정의 문제를 놓고 울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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